저는 원래 공교육 교사였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사회과 교사로 10년을 있었고, 그 시기에 '거꾸로교실'이라는 수업 방법을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강의를 영상으로 빼내고 수업 시간은 활동으로 채우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실제로 제 교실은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게 되더군요. 선생님 한 명 한 명은 바꿀 수 있었는데, 학교는 그대로였습니다. 수업이 아무리 달라져도 학생을 줄 세우는 방식, 시간표가 짜이는 방식, 무엇을 성취로 볼 것인지가 그대로면 결국 원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교육이 진짜로 바뀌려면 교실이 아니라 학교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결정적인 장면은 오히려 제가 거절했던 순간입니다. 거꾸로캠퍼스를 개교한다며 함께하자는 제안이 왔을 때, 저는 거절했습니다. 지금 있는 학교를 더 바꿔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밖에 새 학교를 만드는 것보다 안에서 바꾸는 쪽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1년을 더 해봤습니다. 안 되더군요. 그 1년이 저에게는 확인의 시간이었습니다. 개교 1년 뒤에 교사로 합류했고, 3년을 가르치다 2022년부터 교장을 맡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 1년을 이정표로 삼고 있습니다. 안에서 바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몸으로 겪어봤기 때문에, 밖에서 만든 이 학교가 학교 하나로 끝나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압니다. 여기서 확인한 것이 다시 공교육으로 건너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꾸로캠퍼스와 함께 교육실험실21을 통해 교사 연수와 출판, 지역 청소년 워크숍을 계속하는 이유도 그것입니다.
거꾸로캠퍼스에 오는 학생들에게 왜 왔는지 물으면, 가장 많이 돌아오는 답이 이것입니다. "학교가 나를 성장시켜주지 않는 것 같아서요."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다릅니다. 학교가 힘들어서 온 학생도 있지만, 학교를 잘 다니던 학생도 옵니다. 관계도 좋고 성적도 좋은데 이 교육과정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느껴서 옵니다. 최근 재학생들을 인터뷰하며 인상 깊었던 것은 학교를 떠난 이유를 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학교가 싫었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지만 다음과 같이 말하는 학생들이 더 많습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학교 이름으로 증명하는 것보다 실제로 도움이 되는 걸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었다. 도망이 아니라 더 잘 배울 방법을 찾아 나선 선택이었던 것이지요. 그 학생들이 무엇을 하는지 몇 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무턱대고' 팀은 휠체어를 탄 이웃이 가게 문턱 앞에서 번번이 돌아서는 것을 보았습니다. 장애인복지관이 경사로를 무료로 설치해준다는 사실을 찾아낸 다음, 상점들을 직접 걸어 다니며 하나하나 문을 두드리고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20곳 가까운 문턱이 실제로 사라졌습니다. 이 팀은 졸업하고도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맵퍼스' 팀은 가정 내 상비약 관리 앱을 만들어 출시했고, 진짜 사용자들이 찾아와 쓰는 서비스가 되었습니다. '연청' 팀은 AI 없이 몸으로 AI의 원리를 배우는 교육 툴킷을 만들어 중학생들과 워크숍을 열고 있습니다. '미리' 팀은 초등학생의 가짜뉴스 판별력을 길러주겠다며 보드게임을 만들어 크라우드 펀딩까지 성공시켰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입니다. 한 졸업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학생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배우는 동안, 자신은 잘 배우는 법을 배웠다고요. 저희가 9년 동안 하려던 일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준 셈입니다. 한 어머님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공교육에 다닐 때는 눈에 초점이 없고 결정권 없이 흘러가는 대로 지내던 아들이 여기 와서는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하기 시작했다고 하셨습니다. 몸을 만들겠다며 단백질 음료를 챙겨달라 하고, 피곤하지만 의욕이 넘치는 하루를 보낸다고요. 주변 어른들이 모두 알아볼 만큼 목소리가 커지고 눈빛이 밝아졌다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학생들은 제도상 전부 '학교 밖 청소년'으로 분류됩니다. 매일 등교하고, 우리는 학생이라고 부르고, 여기는 분명히 학교처럼 돌아가는데도 그렇습니다. 저는 이 어긋남이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의 한 얼굴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어려운 것은 증명입니다. 저희는 성적표 대신 성장기록부를 씁니다. 학년도 반도 시험도 없앴습니다. 무엇을 없앴는가는 무엇을 지향하는가를 보여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없애고 나니 새로운 숙제가 생기더군요. 그러면 이 학생이 자랐다는 것을 무엇으로 보여줄 것인가. 학생들은 분명히 자랍니다. 3년 동안 질문을 던지고, 팀을 만들고, 실패하고, 다시 시작합니다. 문제는 그 과정이 대부분 흩어진다는 것입니다. 회고는 각자의 노트에 남고, 작동하지 않은 시도는 기록되지 않고, 프로젝트가 세상에 남긴 영향은 발표가 끝나면 사라집니다. 남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기억뿐인데, 기억은 옮겨지지 않습니다. 제도의 벽도 있습니다. 저희는 학교처럼 운영합니다. 학생들은 매일 등교하고, 코치들이 학생 한 명 한 명의 성장을 맡고, 교육과정도 9년째 다듬어 왔습니다. 그런데 법적으로 저희는 학교가 아닙니다. 이렇게 열심히 배우고 있는데도 그 배움이 학력으로 인정되지 않아 졸업 자격은 검정고시로 따로 증명해야 합니다. 학생이 만든 부담이 아니라 제도가 만들어낸 부담이지요. 그래서 학부모님께, 대학에, 다른 학교에 저희를 설명해야 할 때마다 같은 자리에서 막힙니다. 들려드릴 좋은 이야기는 많은데, 그 이야기가 왜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지를 보여줄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조급해지지 않는 태도라고 느낍니다. 증명이 어렵다고 해서 증명하기 쉬운 것만 하기 시작하면 그 순간 우리가 하려던 교육이 아니게 되니까요. 재는 방법을 바꾸는 일은 재기 쉬운 것으로 옮겨가는 일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그래도 그쪽이 맞는 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면, 저는 이것을 저희 학교 하나의 문제로 보지 않습니다. 공교육이 담아내지 못하는 학생들이 분명히 있고, 그 학생들을 실제로 길러내고 있는 곳이 제도 밖에 놓여 있다면, 그것은 우리 교육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일 테니까요.
한 학생이 학교를 떠나는 날의 장면을 자주 떠올립니다. 그 학생이 손에 들고 나가는 것이 성적표가 아니었으면 합니다. 대신 자기가 던졌던 질문들과 그 질문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를 들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잘된 것만이 아니라 무엇이 안 됐는지도 함께요. 그리고 그 기록을 학생 본인도, 부모님도, 학교 밖의 누군가도 각자의 자리에서 읽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같은 기록인데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말을 거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배움을 증명하는 방식이 하나일 필요가 없어집니다. 지금은 시험 점수 말고는 학생을 알아볼 기준이 마땅히 없어서 대학들도 그 기준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균열은 이미 시작되었어요. 수능 없이 서류와 활동, 토론과 면접만으로 학생을 뽑는 대학이 등장했고, 그런 곳에서 저희 학생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제도 안에 있든 밖에 있든 학교가 자기 언어로 자기가 만든 변화를 말할 수 있는 사회. 제가 그리는 것은 그런 곳입니다. 지금은 학교를 벗어나 다르게 배우겠다는 선택이 유별난 일로 여겨지지만, 그 선택이 유별나지 않은 사회였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을 피해서가 아니라 더 잘 배우기 위해 길을 고르는 일이 당연해지는 사회요. 그 사회에서는 '대안'이라는 말도 아마 필요 없어지겠지요. 그때가 오면 저희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요. 그것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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