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커리어를 밟아가던 어느 날, 문득 '내가 하는 일이 조직의 부속품이 아니라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일 순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막연한 물음을 품고 지내던 중, 무릎 수술 후 재활을 위해 동네를 걷던 할머니께서 길가에 쌓인 폐지를 보시고는, 이를 모아 고물상에 팔며 소소한 용돈과 소일거리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셨습니다. 시간이 지나 이를 알게 된 가족들은 주변 시선과 건강을 염려해 할머니의 폐지 줍기를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제 눈에 들어온 건, 폐지를 줍지 않으면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할머니의 동네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분들에게 조금 더 나은 일자리를 만들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이 일의 시작이었습니다. 고령화가 심화되는 지금은 폐지 줍는 노인을 넘어, 일하고 싶은 모든 노인을 위한 '일자리' 발굴로 고민이 확장되었습니다. 일상에서 마주친 할머니 한 분의 모습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고령자 전체의 일자리 문제로까지 저를 이끈 이정표가 된 셈입니다.
현장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오래 만나는 사람은 당사자인 '노인'입니다. 그런데 그분들과 대화를 거듭할수록 알게 된 건, 고령자에게 '일'이 지금 청년 세대가 생각하는 '일'과는 꽤 다른 층위에 놓여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노인들에게 일은 생계 수단이면서 동시에,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끈이자 '내가 아직 쓸모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는 도구입니다. 소득보다 오히려 이 관계와 존엄의 기능이 더 크게 작동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다만 신체·인지 능력만 놓고 청년과 비교하면 당연히 뒤처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분들이 일터에서 제자리를 찾으려면 과거의 경험과 삶의 축적을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역할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이는 일반적인 일자리 설계가 '효율'과 '생산성'을 축으로 삼는 것과는 다른 접근을 요구합니다. 여기에 제 생각을 더하자면, 이 지점이 바로 세대통합형 모델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노인이 가진 경험 자산과 청년이 가진 기획·마케팅·디자인 역량을 결합하면, 노인은 자신의 속도로 일하며 존엄을 지키고 청년은 그 경험을 콘텐츠와 브랜드로 번역해 시장에서 통하게 만드는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신이어마켙에서 시니어와 청년이 함께 일하는 구조를 설계한 것도, 노인의 '일'이 가진 이 특수성을 효율 중심의 노동시장 안에 억지로 끼워 맞추기보다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는 별도의 판을 만들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가장 큰 벽은 '경제적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가치'를 저울질하지 않고 동등한 전제로 함께 붙잡고 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조직이 지속되지 못하면 그 어떤 좋은 취지도 현장에서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매출과 효율만 좇으면, 애초에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에 대한 답을 잃게 됩니다. 시니어 인력을 채용할 때 일반 노동시장의 생산성 기준으로만 평가하면 이분들은 늘 '덜 효율적인 인력'이 됩니다. 그래서 신체·인지 능력의 차이를 감안한 역할 설계와 공정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 과정 자체가 비용이자 시간이고, 외부에서는 쉽게 이해받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가지려는 태도는, 정량화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가치를 포기하거나 축소해서 설명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신 그 가치가 왜 중요한지, 지속가능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계속 언어화하고 이론화하려 합니다. 벽에 부딪힐 때마다 그 벽을 없애려 하기보다, 벽의 모양을 정확히 이해하고 우회하거나 새로운 판을 짜는 방식으로 접근하려 합니다.
제가 그리는 사회는, 공장 한켠에서 로봇 팔이 정교한 조립을 담당하는 옆에서 시니어 한 분이 그 공정에서 세분화된 검수나 마감 작업을 맡아 자신의 속도로 일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기술이 시니어의 일자리를 없애는 대신, 하나의 큰 공정을 여러 개의 작은 역할로 쪼개어 시니어도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죠. 그리고 그 옆 사무실에서는 청년들이 그 공정에서 나온 결과물을 브랜드로, 콘텐츠로 번역해 시장에 내놓는 마케팅과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건 시니어가 '배려받는 존재'가 아니라 '생산의 한 축을 담당하는 존재'로 있다는 점입니다. 청년도 마찬가지로, 시니어의 결과물을 그저 포장해주는 역할이 아니라 자신의 전문성(기획·브랜딩·디자인)을 마음껏 발휘하는 파트너로 존재합니다. 두 세대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역할을 하며 함께 하나의 상품과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공장, 그리고 그 공장이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 여러 지역에 흔하게 존재하는 사회. 그것이 제가 그리는, 변화가 충분히 쌓인 사회의 한 장면입니다.
사회혁신가가 직접 선정한 참고하면 좋은 자료 모음입니다. 이 자료를 활용해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회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고, 솔루션이 필요한 현장을 조사해보세요. 이를 통해 ① 사회 문제 및 현장 조사 → ② 문제 정의 → ③ 돕는 기술 솔루션 초기 기획의 과정을 차근차근 진행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