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실 비정치적이고 중립적으로 보이기 위해 매우 애썼던 청소년이었습니다. 비수도권 청소년들이 겪는 불평등 이슈와 각종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 내고 여러 활동을 기획해오면서도, 이것이 ‘정치적인 액션’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당시 저에게 정치란 권력욕만 가득한 못난 어른들의 쓸모 없는 싸움, 각종 배신과 협잡과 음모가 난무하는 어떤 생태계…에 가까웠기 때문에, 종종 누군가 저의 활동을 두고 ‘나중에 정치를 하면 좋겠다’ 말할 때면 몸서리치며 선 긋기 바빴습니다. 그랬던 제가 정치의 본질을 폭넓게 고민하고 다시 정의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온 힘을 쏟아 해결하고자 했던 불평등 이슈가 결국엔 정치와 정책, 거버넌스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결론에 반복적으로 도달했을 때. 스무살부터 줄곧 내 또래가 시스템의 실패로 인한 사회적 재난으로 죽고 다치는 일을 너무 자주 목격하는 것 같을 때. 이 모든 장면 앞에 여전히 내가 ‘정치는 잘 모르고 관심 없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회피나 포기임을 알게 되었을 때. 오랜 시행착오를 겪어 같은 결론에 도달하자 질문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정치와 민주주의를 우리의 언어로 다시 가져올 수 있을까. 시스템의 실패로 인해 우리 세대가 자꾸만 다치고 각자도생으로 내몰린다면, 이 흐름에 무력하게 순응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힘은 어떻게 가질 수 있을까. 이 시스템을 질적으로 개선하는데 기술이라는 도구를 활용해볼 수도 있을까. 각자도생이 시대정신이라는 때에도, 이런 질문을 포기하지 않고 마음 한 켠에 심어두며 살아가고 있는 또래 동료들이 있다면 일단 함께 모여 얘기라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전부터 운영해왔던 블로그를 통해 문제의식을 나누고 즉흥적으로 대화 모임을 기획해 초대했는데, 40여명의 구독자 분들이 ‘사실 나도 비슷한 고민이 있다’며 현장에 참여했습니다. 이 정도의 반응이라면 우리 세대를 관통하는 갈증과도 맞닿아 있는 문제의식이라고 생각했고, 개인 커뮤니티를 넘어 조직적 차원의 움직임을 만들어보고 싶어 본격적으로 단체를 설립했습니다. ‘각자도생이 시대정신일 수 없으니까, 좋은 어른-좋은 시민다움을 함께 고민하는 시공간’, 서로를 다정하고 유능한 동료 시민으로 키우는 커뮤니티’를 지향하며 유난무브먼트가 탄생하게 된 배경입니다.
유난무브먼트는 20대 초반에서 30대 중후반까지의 젊은 어른들을 주로 만납니다. 몇몇 기성세대와 미디어는 청년 세대의 개인주의가 극심하고 각자도생을 미덕이라고 여긴다고 쉽게 평가하지만, 그 이면의 복잡성을 이해하면서도 다른 태도와 가치를 세우고 분투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나온 ‘유난피플’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1) 나의 성장도 무척 중요하지만, 타인과의 공존과 연대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 (2) 개인의 문제를 사회의 구조와 연결해서 보려는 태도를 갖춘 사람들. (3) ‘좋은’ 정치사회적 대화에 매우 목말라 있는 사람들. 이러한 마음과 태도가 소진되기 전에 사회적 자원과 인프라로 잘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난피플을 비롯한 우리 세대는 전반적으로 필요와 시급성에 비해 정치와 민주주의를 일상의 언어나 문화로 감각해 본 경험이 무척 적습니다. 우리나라가 비교적 민주주의 제도를 잘 갖춘 국가라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그 민주주의가 나의 일상에서도 작동하는지 묻는다면 쉽게 답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세우고 공개적으로 대화를 나눠보거나, 안전한 환경에서 다름을 이해하고 탐구해본 경험은 더욱 적습니다. 와중에 온라인 공론장에서는 극단적인 의견이나 가짜뉴스, 편향된 정보가 더욱 조명받고 우리 또한 쉽게 노출됩니다. 나날이 심화되는 것 같은 정치적 양극화나 각자도생의 흐름에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지만, 이것을 생산적인 고민과 실천으로 이어갈 시공간은 부족함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사회에 만연한 냉소주의입니다. 정치와 사회는 나의 참여에 관계 없이 결국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다름을 굳이 이해하는 대신 손절과 차단을 선택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결국 혼자 살아남는게 답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와 책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무력한 시민들이 많아질 때 민주주의는 힘을 상실합니다. 따라서 유난무브먼트는 낙관의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낙관하고 희망하는 일은 종종 우리에게 직업 윤리와 같다고 여겨집니다. 눈 앞에 보여지는 여러 정치사회적 갈등과 장벽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되, 그 가운데에서 우리가 공통으로 교차하는 지점을 성실히 짚어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것. 이러한 믿음의 영역을 최후의 순간 기술이 아닌 인간에게 남겨두는 것을 추구합니다.
각자도생이 우리의 시대정신일 수 없으니까! 라고 말하는 1만명의 유난피플이 전국 곳곳에서 활약하며 좋은 어른, 좋은 시민으로서 1.5인분을 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요 지역들에 ‘웰컴 정치토크존’이 생겨나고, 개인의 불안과 고통을 온전히 개인이 감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로 연결해서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문화가 우리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으면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술이 민주주의에 위협이 아닌 협력자로 기여하는 장면과 그 너머의 가능성을 꾸준히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정치’라는 수단이 소수의 전유물로 왜곡되거나 권력 유지 수단으로만 소비되지 않고, ‘민주주의’라는 체제가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본질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데 유난피플의 연결과 움직임이 하나의 유효한 무브먼트로 작용하길 기대합니다.
사회혁신가가 직접 선정한 참고하면 좋은 자료 모음입니다. 이 자료를 활용해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회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고, 솔루션이 필요한 현장을 조사해보세요. 이를 통해 ① 사회 문제 및 현장 조사 → ② 문제 정의 → ③ 돕는 기술 솔루션 초기 기획의 과정을 차근차근 진행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