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역시 5년간의 은둔 경험이 있는 당사자입니다. 5년간 내가 은둔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스스로를 게으르다 낮추며, 개인적인 차원의 노력만을 해왔습니다. 쓰레기가 가득한 방에서 소변도 방 안에서 해결할 정도로 혼란스럽고 통제력을 잃어버린 상태였죠. 30번도 넘게 제 방을 스스로 깨끗하게 치웠다가 31번째 반복되던 때 큰 절망을 하게 됩니다. 그 무렵 상담도 처음으로 시도했지만, 시간 약속도 지킬 수 없고 노쇼를 반복하다 상담 선생님께서 종결을 선언하셨어요. 나를 돕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폐가 되고 있다는 생각까지 중첩되어 임계점을 넘었습니다. 그래서 저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을 당장 봐야만 살 것 같았고, 우울증 영화들을 찾아보다가 봉준호 감독의 <흔들리는 도쿄>라는 작품을 보게 됩니다. 모두가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린 미래를 그린 2008년의 단편인데요. 그것을 보고 처음으로 문제를 내 내부가 아니라 사회적 시선으로 돌려보게 됩니다. 그 끝에서 당시 한국에는 없었던 히키코모리 지원 단체인 일본의 K2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의 한국 지사를 만나게 됐고, 그때부터 비슷한 어려움이 있는 당사자와 선배들을 조우하며 본질적인 회복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시간 약속을 지키지 못해도 상황을 이해했고, 항상 뒤처졌다고 생각했던 저에게 첫 한 달간 내려온 미션은 "푹 쉬기"였습니다. '내가 지금 쉬어도 되는구나'라는 감각을 느끼고, 비슷한 어려움을 겪은 여러 나라의 고립·은둔 당사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생각보다 많은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고, 어쩌면 내가 선구적으로 경험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후 3년간 K2에 채용되어 '은둔고수 양성 사업'이라는 당사자 기반 종사자 육성과정을 운영하며, 저와 사람들의 쓸모를 재정의하는 것이 가장 큰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사회적 스펙에 대한 강박이 매우 심했고, 더 늦었으니까 더 무리해서 바늘구멍 같은 편입에도 도전했습니다. 그러니까 더 크게 실패할 일이 많았죠. 한 명 뽑는 곳에서 예비 3번만 떠도 실패니까요. 그래서 이때부터는 오히려 자격증이나 사회적 스펙이 아니라, 내 인생을 잘 정리하고 내가 걸어온 실패들을 연구하고 사람들에게 잘 설명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조금 자신감이 없는 신념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자격증을 단 1개도 따지 않는 것이 개인적인 목표이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도 해요.
K2라는 조직은 히키코모리뿐 아니라 여러 가지 살아감의 어려움을 느끼는 이키즈라사 상태의 당사자들도 일본 본사와 호주, 뉴질랜드, 한국 지사에서 함께 살아가기도 했어요. 기본적으로 셰어하우스 형태의 통합적 지원을 하는데, 인생 처음으로 외국인과 살아보고 그중에서도 장애인도 있고 경계선 지능, 10년 이상의 히키코모리 등 일반적인 세상을 살아갔다면 평생 진지한 이야기 한 번 해보지 않았을 법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갔지요. 현재까지 7년 반 정도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서사는 모두 다릅니다. 조기에 탈모가 와서 은둔에 빠진 사람, 잘 나가던 명문대에 드디어 합격했지만 이정표를 잃어버린 사람, 조기에 탈모가 온 사람, 약혼녀가 자살한 사람, 해외 유학에서 실패한 사람, 왕따를 당한 사람,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사람 등 너무너무 다양합니다. 은둔과 고립의 이유는 아마 세상에 존재하는 방의 숫자만큼 다양한 것 같아요. 하지만 이들이 결과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도움을 요청해 왔지만 반복된 좌절을 겪었다는 것, 그래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일종의 상상력의 범주가 되어버렸다는 것, 그렇게 혼자 생활하다 보니 여러 가지 성격, 병리적 문제들도 동반하게 되어 점점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어지고, 늦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노력하지만 자기 혼자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계 자본이 있는 사람들보다 현저히 결과가 떨어지게 되고, 결국 세상에 내 자리가 없다는 감각을 하며 완전 칩거로 향해갔던 것 같아요.
일단 내가 확신하고 있거나 경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정치의 흐름이나 사회적 합의에 따라 당장 시도할 수 없는 아이디어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그래서 계속 정치권이나 지원사업에서 정말 간절하게 호소했을 때가 많은데, 우리 모두는 경험하기 전까지 어떤 취약계층이 하는 시위에 대해서 사실 큰 관심이 없고 와닿지 않습니다. 그래서 코로나처럼 공감대가 생기는 타이밍들을 잘 공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세상에 없던 방식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여줄 때 100번의 토론회와 간담회에 가는 것보다 1번의 MVP를 보여주는 쪽이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직접 보여주면 오히려 일이 쉽게 풀리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저도 제가 뜻했던 바를 장기간 서로의 갭을 맞춰서 결국 비슷하게 가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만, MVP를 빨리 보여주는 쪽이 더 유리했겠다는 생각을 요즘 하곤 합니다. 하지만 문제 해결 과정에서는 중요한 국회 토론회 등에 섭외가 되었을 때 빠지는 행위도 되게 불안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뭘 가야 하고 뭘 가지 않아야 하는지 잘 구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원래 은둔도 스펙이 되는 사회를 꿈꿨습니다. 그래서 은둔을 경험한 사람들이 인생에서 겪은 여러 어려움들을 자산 삼아 그 가족과 이해관계자들에게(54만 명의 청년 당사자 고객과 그에 파생되는 사람들에게) 도움도 주고 돈도 벌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 생각이 확장되어서 왜 우울증을 우리는 계속 마이너스라고 생각할까?라는 질문에 도달했고, 우울증에 걸렸을 때 여행 오고 싶은 나라로 브랜딩하자는 쪽이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10월 말~11월부터는 북촌의 외국인이 많은 지역에 신규 사업을 오픈하게 되었고, 그게 그 첫 발걸음일 것 같습니다. BTS, K드라마 다 좋은데 너무 소수의 성공일 뿐입니다. 저는 다양한 삶의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직업을 가지고 있고, 그게 꽤 재밌고 세련되고 인간적이어서 BTS가 메인 요리라면 사이드 메뉴 때문에 한국에 관광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꿈꿉니다. AI 시대로 많은 것이 대체될수록 사람들은 더 쓸모를 잃고 고립될 것이고, 지구상 가장 인간성이 짙은 곳을 그리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닭볶음면 신드롬보다 더 큰 신드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한국이 그 인력을 미리미리 쌓아간다면 저는 앞으로의 50년에 가장 큰 국가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모두가 조금 더 사랑하기 쉬운 미래도 꿈꿉니다. 제가 자본이 있다면 사회적기업판 결혼정보회사를 만들고 싶기도 해요. 너무 기성의 스펙만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조금 더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서로 지지하는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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