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코이카 해외봉사단으로 캄보디아에 파견되었습니다. 캄보디아 시엠립 빌브라이트대학에서 한국어교원으로 2년 3개월 근무하고 왔습니다. 그곳에서의 주 업무는 현지 대학생 대상 한국어가이드 양성이었습니다. 시엠립이라는 지역적 특성도 있었고, 대학생들을 주로 만났었기에 제게 캄보디아인들은 항상 밝고 긍정적이면서도 열정 넘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2007년 3월 한국으로 귀국하여 캄보디아 결혼이주여성을 위한 한국어교육 봉사활동을 하게 됐는데... 그들의 모습은 내가 캄보디아에서 만난 캄보디아인들과는 너무도 달랐습니다. 다양한 이유로, 다양한 꿈을 가지고 한국으로 왔는데 막상 한국에서의 삶은 비참할 정도였습니다. 15살 어린 나이에 언니 신분으로 시집와서는 출산 강요 및 시집살이에 힘들어하는 여인, 비 오는 날이면 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 때문에 한 겨울 공원 벤치에서 노숙을 해야하던 여인, 친정 엄마보다 나이 많은 남편과 시누이, 그리고 거동 못하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하던 여인... 그들의 삶은 캄보디아에서보다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다시 직장인으로 복귀한 저는 봉사활동으로 만나는 무수히 많은 캄보디아인들을 통해 삶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캄보디아어를 할 수 있는 한국인은 전무했고, 캄보디아인 네트워크도 없던 시절이기에 그들은 내 전화번호를 여기저기 돌리기 시작했고... 저는 많은 고민을 해야했습니다. 나는 그들을 포기해야할까? 아니면 조금더 적극적으로 그들의 편에 서야할까? 캄보디아에서의 삶, 그리고 한국 귀국 초창기 캄보디아인들과의 만남은 제가 아주 강력하게 박혀있습니다. 이에 저는 항상 모든 일에 있어서... ‘이주민들이 모국에서 만큼 나를 표현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자.’ 그들은 코리안드림을 꿈 꾸며 한국에 왔을텐데 살아남기 위해 애 쓰는 삶이 아닌 ‘꿈을 찾아 도전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하자. 가 저의 모토입니다. 이에 그들의 꿈을 현실로 마련해주기 위한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있습니다.
위 문제로 고민하던 시점, 2012년 겨울... 우연히 관악구청으로 외근을 나왔고, 그곳에서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 모집설명회를 듣게 되었습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 비즈니스를 하는 사회적기업이 있다는 겁니다. 지금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봉사활동을 겸하는 것을 같이 묶어서 하나의 일로 만들 수 있다니... 뭔가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2013년 4월 저는 관악구 사회적기업 인큐베이팅 기관인 ㈜세스넷을 통해 사회적기업가육성사업3기가 되어서 아시안허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캄보디아언어문화연구소로 시작하고자했으나, 봉사가 아닌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캄보디아라는 작은 나라 하나로는 일을 시작하기 어렵다는 조언에 아시안허브로 네이밍을 하게됐는데 지금은 남미, 아프리카 등 다양한 국가 사람들이 모이면서 또 네이밍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선 저는 세스넷 및 사회적기업진흥원의 도움으로 문제해결을 시작하게되었고... 각 국가 별 리더 격의 멋진 이주민들을 많이 만나면서 그들과 함께 구체적인 고민을 하고 해결방안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캄보디아 사업가와 재혼해서 사업도 하고, 통번역도 하면서 멋진 커리어우먼으로 성장한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매우 작고 갸날픈 몸으로... 초췌한 표정으로 아시안허브를 찾아와서는 일을 하고 싶다했습니다. 그녀에게 통번역의 기본을 가르치면서 사이버대학 입학도 권유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통번역사는 실력도 보지만 학위도 중요하다고... 그녀는 어떤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습니다. 어느새 사이버대학교 졸업하고 통번역실력도 인정받을 즈음... 여전히 본인을 밥통으로만 바라보는 남편과 더 이상 살기 힘들다했습니다. 많은 결혼이주여성들은 다양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집 안에 가둬두고 살림만 강요하는 가부장적인 남편들이 많은 시점에서 그들은 한국에서의 가정을 포기하게됩니다. 한동안 이주여성 역량강화를 핑계로 다문화가정 이혼률을 높이는 건 아닌가? 고민도 많이 하게됐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생각하며 과감하게 그들의 편에 서게되었습니다. 그들을 강사, 통번역사, 작가로 성장 시키면서 한 명씩 그들의 이름을 찾아주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아시안허브는 14년차 기업이 되었습니다. 다문화기업으로 어느 정도 인지도는 생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취미생활을 하는 단체가 아닌 자신의 꿈을 찾아 돈을 벌고 자립하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기업입니다. 그런데 이주민 일자리가 형성되면서 다문화강의, 통번역 단가가 14년 전보다 낮아지고 있습니다. 물론 AI 영향도 큽니다. 특히 이주여성이 만든 다문화그림책은 개성 있고 중요한 자료이지만 구입률은 매우 낮습니다. 이들은 1년 이상의 작업과정을 거쳐 한 권의 책을 출판하지만 정착 이 책은 시장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초판 1쇄 책들도 창고에 쌓여만 갑니다. 혹자는 다문화그림책이니 전국에 있는 모든 도서관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한 권씩만 사줘도 몇 권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각 도서관과 학교에 저희 이주여성들의 책이 꽂혀있고... 그 책으로 다문화강의를 할 수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될 수 있도록 AI 홍보툴을 만들 수는 없을까? 고민 중입니다. 현재 인쇄책과 전자책이 있고, 그 책의 대부분을 유튜브에 무료 오디오북으로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작가들은 다문화강의를 매우 잘 합니다. 이들이 더 많은 일ㅇ르 할 수 있도록 함께 방법을 고민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먼저 이주민들이 한국사회에서 내 꿈을 찾고 그 꿈을 펼쳐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물론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이주민들의 꿈의 날개는 더 오색찬란할 겁니다. 그 오색찬란한 날개가 대한민국 다문화사회도 발전시킬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몇 년 전 필리핀 그림책을 출판한 결혼이주여성과 함께 필리핀 모교에 방문해서 북콘서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필리핀 교육부 등 정부에서 이주여성들에게 매우 감사해했습니다. 특히 필리핀은 영어를 사용하면서 교육부에서조차 타갈로그어를 아끼지 못하고있는데 이주여성이 먼 한국땅에서 본인들의 이야기를 타갈로그어와 한국어, 영어로 써서 출판을 했다니 감격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본교 출신의 선배가 이렇게 대단한 일을 했다고 큰 축제를 열어줬습니다. 이에 이주여성들은 매우 뿌듯해했습니다. 그렇듯 우리의 작은 행동이 이주민들만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그들의 나라와 한국 사이의 외교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들의 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보여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