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배우고 싶어 조경학과에 들어갔고, 도시생태 환경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었다. 방향을 바꾼 건 두 장면 때문이었다. 하나는 김포평야의 대장들녘이다. 겨울이면 큰기러기와 재두루미가 찾아오던 240만 평의 들판. 논습지를 매립해 산업단지와 신도시를 짓겠다는 계획에 맞서면서, 나는 환경을 학술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조건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시민단체와 함께 "이곳만은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보전 운동에 몸과 마음을 쏟았다. 개발은 진행됐고 재두루미는 떠났지만, 그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다른 하나는 홍대입구역 앞 느티나무다. 머리가 잘리고 가지 하나 남지 않은 모습을 보며, 연구과제 보고서로는 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절감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구조였다. 2020년 페이스북에 '과도한 가지치기를 제보해 주세요' 그룹을 만들자 전국에서 사진이 쏟아졌다. 시민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어디에 말해야 할지 몰랐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연구자이자 활동가, 스스로 '환경생태 연구활동가'라 부르는 사람이 되었다.
현장에는 늘 시민이 있었고, 그들은 나보다 앞서 있었다. 대장들녘에서는 학생들과 제비조사단을 꾸려 마을을 돌며 둥지를 조사했다. 천 마리가 넘는 제비가 눈앞에서 날아오르던 순간을 함께 목격한 아이들이 있었다. 겨울마다 재두루미에게 볍씨를 뿌리고, 논을 임대해 유기농 농사를 짓던 시민들도 있었다. 도시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 나무가 잘리는 걸 참지 못하고 처음 기사를 쓴 선생님,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에서 사라질 나무 아래를 걸으며 어린 시절 기억을 들려준 주민. 양재시민의숲에서 나무에게 이름을 지어주자, 스쳐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시민과학 현장에서 만난 이들은 전문가가 아니어도 가장 촘촘한 관찰자였다. 안양천에서 철새를, 공원에서 야생벌을, 길거리에서 가로수를 직접 관찰하고 기록하며 도시의 변화를 가장 먼저 읽어냈다. '나무의 권리 선언문'을 함께 쓸 때도, 사람들은 마치 나무가 직접 말하는 것처럼 써 내려갔다. 활동가인 내 문장은 구호에 가까웠고, 그들의 문장은 공감에 가까웠다.
가장 큰 벽은 생명을 생명으로 보지 않는 시선이다. 나무는 방해되면 베는 '시설물'로, 들판은 개발을 기다리는 빈 땅으로 여겨진다. 안타까워하는 다수는 침묵하고, 없애자는 소수는 강하게 목소리를 낸다. 또 하나의 벽은 기록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민이 본 장면이 데이터로 남지 않으면 운동과 정책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활동가 몇 명이 발로 뛰어 기록할 수 있는 양은 도시 앞에서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시민과학이 필요하다. 시민이 직접 관찰하고 기록한 자료가 환경문제 해결의 근거가 될 수 있음을, 여러 현장에서 확인했다. 필요한 태도라면, 먼저 멈춰 서서 바라보는 것이다. 돌봄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그리고 혼자 하지 않는 것. 누군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 이야기는 생각보다 멀리 퍼진다. 작은 기록과 참여가 모여 제도를 바꾸고 기준을 만든다. 완벽한 수단을 기다리기보다 부족한 대로 시민과 함께 발을 떼는 것, 그것이 내가 배운 태도다.
도시의 변화를 시민이 가장 먼저 발견하고 기록하는 사회를 상상한다. 철새가 쉬어가는 하천에서, 가로수 그늘 아래에서, 작은 야생벌이 날아드는 꽃밭에서, 시민 한 사람의 관찰이 도시 생태의 지도가 되는 장면. 가로수가 '시민의 나무'가 아니라 '시민인 나무'로 여겨지는 도시. 출근길에 만난 나무에게 사람들이 이름을 부르고, 그 순간 나무가 배경이 아니라 존재로 들어오는 장면. 재건축이 결정되기 전에 그 나무들이 이미 주민의 기억으로 기록돼 있어, "베어도 그만인 장애물"이 아니라 "안부를 묻던 존재"로 논의 테이블에 오르는 장면. 시민이 만든 기록이 정책과 제도를 바꾸는 힘이 되어 다시 시민에게 돌아오는 순환. 스스로 말할 수 없는 나무와 새를 대신해 시민의 목소리가 그 자리를 지키는 사회. 그렇게 도시가 조금 더 생태적으로 민주적인 곳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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